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Greta Gerwig’s Little Women | 고전을 다시 쓴다, 여성의 이름으로

by 꿀팁 방출 2025. 5. 9.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의 2019년작 《작은 아씨들》은 수많은 리메이크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고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 여성의 자율성과 창작, 정체성의 의미를 새롭게 그려낸다. 거윅은 원작의 서사를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 현대적인 시선을 덧입혀 지금을 사는 여성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작은 아씨들>은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자기 삶을 직접 쓰고 말하는 현재의 서사로 변모했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조 마치가 있다. 그녀는 단순히 가족 중 한 명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정의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다. 거윅은 영화의 시간 구조를 비선형적으로 재편하며, 조의 기억과 현재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내면을 따라간다. 이는 조가 소설을 구성하듯 자신의 삶을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며, 결국 글쓰기 자체가 여성의 정체성과 삶을 지키는 행위임을 암시한다. 조가 출판사와 협상하며 "주인공이 결혼하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요구에 맞서는 장면은 이 영화가 단지 사랑 이야기 이상의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로서의 주체성, 여성 서사의 독립성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시선도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각 자매는 다른 선택을 한다. 메그는 전통적인 가정을 택하고, 에이미는 예술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타협을 찾는다. 조는 끝까지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며,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외친다. 거윅은 사랑과 독립을 이분법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의 감정과 욕망이 얼마나 복합적이며, 개인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고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자유다. 사랑하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타인의 기대가 아닌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삶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거윅이 제시하는 ‘현대적 여성상’이다.

또한 <작은 아씨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따뜻함과 동시에 억압을 함께 보여준다. 네 자매의 유대는 영화 전반에 걸쳐 따뜻하게 그려지지만, 동시에 개별성의 실현을 위한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조가 뉴욕으로 떠나고, 에이미가 유럽에서 자신의 예술적 가능성을 바라보는 순간들은 가족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 개인을 자각하는 계기가 된다. 거윅은 이 과정을 통해 '가족 안에서의 여성'이 아닌, '가족과 나란히 선 여성'이라는 새로운 관계 모델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여성 창작자의 손에 의해 다시 쓰였다는 사실이다. 거윅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원작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언어와 시선으로 재구성했다. 영화 속 조가 자신의 원고를 손에 들고 출판사와 협상하듯이, 거윅은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다. 그녀는 여성을 단지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쓰는 주체로 위치시킨다. 이 영화는 ‘누가 이야기를 쓰는가’라는 질문을 영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분명하다. 여성이, 자신을 쓰는 여성들이 그 이야기를 만든다.

<작은 아씨들>은 고전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쓰는 창조적 시도다. 그레타 거윅은 조 마치를 통해, 그리고 조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드러낸다. 여성은 더 이상 누군가의 딸, 누이, 아내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작가이며, 주체이며,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영화는 그 선언이자 증명이다. 그래서 <작은 아씨들>은 고전이지만,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여성 영화다.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작은’ 아씨들이 아닌, 삶의 크기를 스스로 정하는 여성들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