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가 추억이 되고, 재즈가 그리움이 되는 순간
처음 <라라랜드>를 보았을 때,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뮤지컬 로맨스가 아니라는 걸 곧바로 느꼈다. 음악감독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그 중심에는 ‘음악이 이야기를 이끈다’는 철저한 설계가 있었다. <라라랜드>는 말보다 멜로디가 앞서고, 대사보다 피아노가 진심을 말하는 영화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곡의 전개에 따라 요동치고, 관계의 변화가 음악의 분위기로 전달된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도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영화 초반, 고속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뮤지컬 넘버 〈Another Day of Sun〉은 단순한 오프닝이 아니다. 꿈을 좇는 젊은이들의 설렘, 도시의 리듬, 그 안에서 피어나는 재즈의 에너지를 한 장면에 농축시킨다. 음악은 단순히 흥겨운 배경이 아니라, 카메라 워킹과 배우의 움직임, 햇살과 그림자까지 이끌어가는 핵심이 된다. 음악이 도시를 이끌고, 음악이 꿈을 움직인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반복되는 테마곡 〈Mia & Sebastian’s Theme〉에 있다. 처음엔 서툰 피아노 연주로 들려오던 그 멜로디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부드러워지고, 풍부해지고, 결국 감정을 터트리는 서사로까지 확장된다. 같은 선율이지만, 사랑의 시작일 땐 설렘으로, 갈등의 순간엔 아픔으로, 이별 이후엔 아름다운 회한으로 들린다. 음악은 이렇게 하나의 감정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린다.
또 하나 인상 깊은 곡은 〈City of Stars〉이다. 이 곡은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되며, 의미가 점점 변해간다. 처음엔 막 피어나는 연애의 설렘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멜로디는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처럼 들린다. 같은 노래가 점점 더 쓸쓸해지는 과정은 이 영화가 어떻게 음악을 서사 구조로 활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음악이 곧 감정의 기록’이 되는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상상 시퀀스다. 두 사람이 함께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오케스트라는 폭발하고, 세상의 모든 감정이 하나의 음악 안에 응축된다. 여기서 음악은 ‘시간을 되감는 장치’이자 ‘감정의 회고록’으로 기능한다. 그 한 장면 안에 음악은 설렘, 환상, 후회, 눈물, 그리고 아름다움을 동시에 품는다. 음악 없이 이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라라랜드>의 음악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말하지 않지만, 듣는 순간 누구나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음악이 대사를 대신하고, 음악이 침묵을 해석하며, 음악이 두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게 한다. 음악감독으로서 나는 이런 설계에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 미아와 세바스찬이 서로를 바라보고 웃는 그 짧은 장면에서, 처음 들었던 멜로디가 다시 흐른다. 하지만 그 곡은 이제 다르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사랑, 이뤄졌지만 함께할 수 없었던 꿈. 그 모든 것이 단 한 곡 안에 녹아 있다. <라라랜드>는 그걸 해낸다. 그것이 이 영화가 전 세계 수많은 음악인들의 심장을 울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