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족의 본질과 사회적 불평등을 그려낸다. 현실의 구조적 문제를 예술적으로 해석한 두 작품은, 동시대의 자화상을 날카롭게 비추는 거울과 같다.
영화 『기생충』과 『만비키 가족』은 모두 현대 사회의 빈곤과 가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과 정서는 확연히 다르다.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를 극명하게 시각화하면서 빈부격차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반면, 만비키 가족은 일본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가난과 제도 밖 존재들의 삶을 조용하고 섬세하게 포착한다. 기생충은 반지하 집에서 시작해 언덕 위 대저택으로 향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을 통해 계급 상승에 대한 환상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긴장감과 반전은 관객의 감정을 끝없이 흔든다. 반대로 만비키 가족은 천천히 쌓이는 장면과 감정의 결을 통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족’의 또 다른 형태를 조용히 제시한다. 두 영화 모두 가족의 경계와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기생충은 법적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강조하며 물질 중심 사회의 허상을 꼬집고, 만비키 가족은 제도적 보호 밖에 놓인 사람들의 연대와 애정을 통해 가족의 본질을 되짚는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작품 모두 사회의 시선에서 보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기생충의 가족은 사기와 조작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며, 만비키 가족은 절도와 불법적인 양육이라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들이 처한 현실은 영화 속에서 마냥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두 영화는 관객에게 깊은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법적으로 맞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도 옳은가’, ‘가족이라는 개념은 피로만 설명될 수 있는가’, ‘사회는 왜 가장 약한 사람들을 놓치고 있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물음이다. 기생충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직선적인 충격과 반전을 통해 응답하며, 만비키 가족은 미묘한 표정과 대사 없는 장면들로 그 답을 유보한 채 관객에게 넘긴다. 또한 두 작품은 각각의 사회 시스템이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폭력을 가하고 있는지를 형식과 연출로 드러낸다. 기생충은 계단, 지형, 공간 배치를 통해 시각적으로 계층을 나누고, 만비키 가족은 병원, 학교, 행정기관 등 제도의 벽이 어떻게 사람들을 배제하는지를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결국 두 영화 모두 현대 자본주의와 제도의 구조 안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주목하며, 그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고립과 연대를 동시에 그려낸다. 이런 공통점 속에서도, 봉준호는 시니컬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려낸 반면, 고레에다는 연민과 따뜻한 거리감으로 인물을 바라본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두 감독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누구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누군가는 너무 쉽게 모든 것을 누리는 사회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족이라는 최소 단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강한 생존의 틀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증명한다. 기생충과 만비키 가족은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영화지만, 서로를 나란히 두고 비교해 보면 훨씬 더 깊은 통찰을 얻게 된다. 두 작품은 단순한 가족영화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자, 사회가 구조적으로 놓치고 있는 진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