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반지하, 계단, 그리고 반전의 서사다. 하지만 음악 감독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면, 떠오르는 건 '불편한 정적'과 '조용한 긴장' 속에서 점점 고조되는 음악의 존재감이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은 늘 소리와 침묵을 정교하게 설계하지만, 기생충에서는 특히 음악이 이야기의 숨은 언어로 기능한다.
조영욱 음악감독이 기생충에서 사용한 음악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 영화는 화려한 오케스트라나 명확한 테마송 없이, 아주 조심스럽고 미묘한 클래식풍 음악을 배치한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바로크풍의 현악 사운드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짜 교양'과 '계급 위장'의 순간에 삽입된다. 김기우가 박 사장네 집에 면접 보러 갈 때, 그의 복장과 말투, 음악이 함께 위로 올라간다. 음악이 말해주는 건 “이건 진짜 교양이 아니라 흉내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시선이다.
이러한 음악적 아이러니는 기생충 전체를 관통한다. 영화의 전반부에는 음악이 인물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듯 따라가지만, 중반 이후 이야기가 뒤집히는 시점부터는 음악이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한다. 특히 지하실의 존재가 드러난 이후, 사운드 디자인은 더 정교해지고, 음악은 거의 공기처럼 흐르며 관객의 심장을 조이는 역할을 한다. '음악이 없다’는 그 자체가 불안함을 만드는 장치로 사용된다. 이것은 음악의 존재감을 정면에 내세우는 대신, 배경에 숨겨 더 강력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전략이다.
영화 후반, 폭우가 내리고 김가네 가족이 다시 반지하로 돌아가는 장면에서의 음악은 그 절정을 보여준다. 멜로디는 사라지고, 음의 질감과 톤만 남는다. 물이 차오르고, 몸이 젖고, 가구가 둥둥 떠다니는 그 순간 음악은 우리에게 말한다. 이건 재난이 아니라, 구조적 불행이다. 단 한 번의 위기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사람들의 현실을 말이다.
또한, 기생충은 전통적인 영화 음악과 달리, 인물의 감정에 직접 반응하기보다, 상황과 구조를 해석하며 관객에게 해답 대신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상황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 음악은 왜 이렇게 고전적인가?" 클래식한 선율은 박 사장네의 정갈한 인테리어와 어울리면서도, 가짜 교양의 상징으로 배치된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위선적이다. 음악이 드러내는 그 이중성은 바로 이 영화가 지닌 메시지의 핵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생일파티 도중 벌어지는 참극이다. 음악은 이 장면에서도 절제되어 있다. 폭력과 피, 비명 속에서도 음악은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다. 관객에게 울라고 강요하지 않고, 슬프라고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비극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음악이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 위에 떠 있는 것이다. 그 거리감이 오히려 더 큰 여운으로 남는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음악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대본 단계에서 이미 음악의 자리를 정한다”고 말했다. 기생충이 음악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이유는 바로 이 사전 설계에 있다. 감독과 음악감독의 긴밀한 협업, 그리고 장면마다 필요한 ‘침묵’과 ‘음’의 균형 감각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정교함이었다.
결국 기생충에서 음악은 말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때로 계급의 소리였고, 때로는 침묵 속 울림이었다. 화려한 멜로디 대신, 낮게 깔린 불안과 정적으로 구성된 음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소리들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귀에 맴도는 건 어떤 주제곡이 아니라, 그 '소리의 결핍'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악감독으로서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면, 기생충은 단지 뛰어난 이야기만이 아니라, ‘소리의 언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를 휩쓸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