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전 세계 영화 팬들이 숨을 죽이고 화면을 응시하던 그 순간, 사회자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Best Picture... Parasite.”
그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다. 한국 영화사 100년 동안 누구도 이뤄내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고, 그것은 단순한 수상이 아니라 세계 영화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선언이었다. 한국 영화가, 비영어권 영화가, ‘올해의 영화’로 선정된 그 장면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해줬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총 4관왕을 차지하며 아카데미를 평정했다.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일 뿐 아니라, 비영어 영화로서도 전례 없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최초’라는 단어만으로는 이 영화가 만들어낸 파장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기생충은 예술성과 대중성, 사회적 메시지, 장르적 재미까지 모두 완벽히 녹여낸 ‘완성형 영화’였다. 동시에, 현대 사회에 대한 하나의 사회학적 진단서였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은, 한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서울 어딘가의 반지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곧 세계 모든 도시에 존재하는 ‘가난한 자’의 고달픈 삶과 ‘부유한 자’의 무지함을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은 이 이야기를 단순한 리얼리즘으로 풀지 않았다. 유머와 공포, 미스터리와 비극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을 끌어당기고, 끝내 놓아주지 않는다. 웃음이 멈칫하게 만들고, 몰입 끝엔 묵직한 충격을 안긴다. 그 감정의 곡선은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본성에 대한 통찰이었다.
연출 또한 매우 정교했다. 공간의 수직 구조, 계단과 빛의 활용, 인물의 위치와 동선은 말보다 많은 것을 암시한다. 박 사장네 고급 주택은 조용하고 빛으로 가득하다. 반면 김가네 반지하는 술에 취한 이의 오줌 냄새와 쓰레기 더미가 창밖을 덮는다. 이 대비 속에서 봉준호 감독은 ‘불평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 차이를 ‘느끼게’ 만든다.
“계획이 없으면 실패도 없다.”
극 중 인물의 이 대사는 이미 무너진 사다리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체념이자 자조이며, 시대의 목소리였다.
이 영화의 성공은 한국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완벽에 가까운 영화”라고 평했고, 롤링스톤은 “봉준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자막에 익숙하지 않다는 편견을 깨고, 미국 내에서 5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린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로는 유례없는 성과를 기록했다.
프랑스에서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사회 풍자와 유머, 인간성의 아이러니가 결합된 걸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170만 장 이상의 티켓이 팔렸고, 르몽드와 카이에 뒤 시네마 같은 주요 매체는 이 영화를 매일같이 조명했다.
정치적으로 긴장이 흐르던 일본에서도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는 영화다”라는 태도로 관객들이 호응했고, 일본 감독들 역시 “한국의 힘을 넘어 아시아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인정했다.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는 기생충이 하나의 ‘사회적 사건’처럼 다뤄졌다. 독일 슈피겔지는 “이 영화는 세계적인 계급 갈등을 날카롭게 포착한 시대의 초상화”라며, 당시 유럽의 정치 불안과 연결지었다.
남미에서는 브라질, 멕시코 평론가들이 영화의 공간성과 계급 구조에 강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브라질 폴랴 지 상파울루는 “이 영화는 리우의 빈민가와 바로 옆 고급 주택가를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한국.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은 그 자체로 ‘국민적 축제’였다. 거리에 현수막이 걸리고, 신문은 1면을 봉준호로 도배했다. 기자회견장의 “I’m ready to drink tonight”이라는 유쾌한 선언은 한국인의 유머와 여유, 그리고 철학을 세계에 전한 순간이었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은 그 해, 이 수상은 그 무엇보다 상징적이었다.
물론 모두가 환호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반자본주의적 시선에 불편함을 드러냈고, 미국의 일부 비평가들은 “사회적 메시지가 과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 영화가 ‘사회와 대화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기생충이 오스카를 휩쓴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시대가 원한 이야기, 그리고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언어를 초월한 감정의 진정성, 봉준호 감독의 철학과 장인 정신. 세계는 결국 깨달았다.
최고의 영화는 영어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으며,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생충은 단지 트로피를 얻은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감정을 건드렸고, 다음 시대의 기준을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