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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라라랜드>로 본 시각 언어 미장센 입문기

by 꿀팁 방출 2025. 5. 10.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의 나는 영화를 본다고 하기보다는 '줄거리를 따라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관객이었다. 누가 주인공이고, 어떤 갈등이 있고, 결말은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만 알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멋진 장면이 나오면 “와, 이쁘다” 하고 넘어갔고, 캐릭터가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웃었지만, 그 장면이 왜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왜 마음이 흔들렸는지를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두 편의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또 하나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였다.

이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장르이고, 표현 방식도 극과 극이지만, 공통적으로 나에게 ‘미장센’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만든 영화였다.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줄거리에 빠져들기보다 이상하리만큼 특정 장면들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반지하 집의 낮은 창문 너머로 비치는 담배 연기와 비에 젖은 골목, 박 사장의 고급스러운 집에서 주방과 거실 사이를 무심하게 오가는 다송이의 걸음걸이, 그리고 비 오는 날 계단을 끝없이 내려가며 무너지는 기택 가족의 얼굴들.

그 장면들에는 대사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단지 '보기 좋게 만든 화면'이 아니라, 감독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말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말보다 공간으로 말하는 연출의 대가다.

<기생충>에서 '계단'은 그 어떤 대사보다 강력한 상징이다.

고지대의 대저택은 '위'를 상징하고, 반지하는 '아래'를 상징한다.

기택 가족은 언제나 계단을 내려간다. 부잣집에서 일한 후엔 계단을 따라 어두운 골목을 지나 반지하로 돌아간다.

비가 오는 날, 박 사장의 집에서는 빗물이 풍경을 감상하는 배경음악이었지만, 기택의 집에선 오물을 퍼내야 할 재난이었다.

같은 비가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누군가에게는 절망이라는 사실을 봉준호는 하나의 장면, 하나의 공간 배치로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미장센이라는 개념의 힘이다.

<라라랜드>를 본 건 그보다 조금 뒤였다.

음악과 춤이 있는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던 나였기에, 처음엔 단순히 '예쁜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밤하늘 아래 미아와 세바스찬이 춤을 추는 언덕 위 장면, 그리고 마지막 클럽 씬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과 함께 되풀이되는 ‘다른 결말’의 몽타주.

그 장면들을 다시 떠올릴수록, 색과 조명, 공간과 움직임이 어떻게 감정을 조율하는지가 느껴졌다.

특히 기억나는 건 미아가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던 장면이다.

보라색은 미아의 개성과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듯했고, 그 주위의 배경은 전부 절제된 톤이었기에 그녀의 존재가 더 빛났다.

<라라랜드>는 장면마다 색이 감정을 대신한다.

노란 조명은 따뜻한 기회의 시간, 파란 조명은 미지의 미래, 붉은 조명은 격정적인 열정을 상징했다.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감정의 상태를 색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약 세바스찬과 미아가 사랑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들이 꿈꿨던 환상의 기억이 빠르게 몽타주처럼 지나가며, 우리는 알게 된다.

이건 이루어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그 장면의 색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동시에 슬프게 아름다웠다.

나는 이 두 영화를 통해, 감독이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관객의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내는지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이야기만 따라갔지만, 이제는 카메라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인물이 어떤 조명 아래에 서 있는지, 배경에 왜 저런 소품이 놓였는지를 유심히 본다.

왜냐하면 그것이 감독이 숨겨놓은 또 하나의 언어, 바로 미장센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읽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기생충>과 <라라랜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감독이 설계한 시각적 언어를 하나씩 읽어나갈 때, 영화는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영화를 본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를 느낀다고 말하게 된다.